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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이 장면마다 묻어나왔다. 벽과 바닥에 보이는 작은 균열과 빗방울의 모습부터 디테일이 감탄스러웠다. 이렇게 멋진 장면이 연속되어 나오다가 중간 불꽃놀이에서 장면의 품질이 갑자기 3d 건축 모형 느낌이라서 당황스러웠다.

감독은 비청소년에대한 반감이 있는 것 같다. 가출 청소년, 청소년 가장, 사회 소외 계층인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사회는 항상 어떤 판타지적 재난 요소로 불운과 부정에 시달리며 세상을 유지하고 있다. 너의 이름은 영화에서 운석으로 표현됬고 날씨의 아이에선  폭우로 표현되었다.  

 

와동시에 그 모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몫은 주인공에게 내맡겨진다. 주인공들은 언제나 소외되고 연약한 청소년이다. 고대 문명에서 인간 제물이란 희생을 통해 미래에대한 희망을 그려왔다. 문명마다 제물의 대상이 다르긴 했으나 가장 강인하고 뛰어난 사람이거나 힘이 없는 여자와 아이가 주를 이루었다. 희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책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만든 문제와 현실을 특정 인물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난폭한 날씨 속에서 위험한 도시, 총기가 떠돌아다니는 도시, 부모가 없이 열심히 일하며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맥도날드부터 사창가까지 갈 현실을 마주한 주인공, 시골에서 꿈과 소망을 찾아서 도쿄에 왔으나 미성년자라는 제약에 일할 곳도 없고 받아주는 곳도 없는 주인공은 월급 3000엔에 일을 한다. 주인공은 그저 잘살길 바랬고 자신의 능력을 통해서 일순간이지만 사람들의 고충을 해결해주었다.

 

매 번 자신의 생명을 깍아서 말이다. 말로에는 모든 생명을 바쳐야 모두가 구원 받는다는 식의 희생이 강요되었다. 책임 없는 자가 책임 지게 생긴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계속 통제하려고 든다. 식사, 주거비, 교통비, 통신비를 내주니 3000엔만 주어도 괜찮다는 식이다. 아이의 의사를 묻지않고 반강제로 아동보호소에 보내버리는 식이다.

 

결말부에는 자신이 호다카의 뺨을 때리고 복부에 발길질을 하는 아동학대를 해놓고 경찰이 호다카를 폭행하자 네가 감히? 발끈하며 경찰을 막는다. 아이를 일종의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호다카가 히나에게 이제 날씨의 무녀가 아니라고 소리치는 모습은 마치 네 책임이 아니라고 울부짓는 모습을 연상 받았다.

 

 

 

결말에 이르러서 재난적 요소가 해결될 것이라 예상했으나 틀렸다. 재난의 책임은 현재까지 살아온 어른의 책임이기에 아이에게 희생과 책임을 강요해선 안된다는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예상해본다. 감독은 일본의 근현대사를 부정하는 것 같다.

 

일본의 전체주의 위주의 근현대사는 개인들에게 책임을 강요하고 전체를 위한 희생을 요구했다.

그 과정 속에서 결국 가장 약한 개인들에게 고스란히 가장 많은 희생의 몫이 돌아간다.

목숨으로 책임지고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는 암울한 사회이다.

 

다른 나라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아서 더 씁쓸한 영화이다.

책임지지 못하는 사회. 불안 사회.

 


WRITTEN BY
소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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